[ 서울 = 한경 ] ( 박지원 외신캐스터) = 세계 경제의 방향키를 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전례 없는 내우외환에 휩싸였다. 밖에서는 백악관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해임을 염두에 둔 듯한 파상공세를 펴고 있고, 안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를 둘러싼 내부 균열이 심화하는 등 안팎으로 거센 도전에 직면했다.
◆ 백악관의 '파월 해임' 압박…'베르사유 궁전' 비난에 '법률 위반' 덫까지
트럼프 행정부와 파월 의장 간의 갈등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산 저격수'인 러셀 보트 백악관 예산관리국(OMB) 국장이 직접 공격의 선봉에 섰다.
보트 국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준 본부 건물 공사비가 베르사유 궁전 건설비에 맞먹는다"는 자극적인 비유를 던졌다. 그는 "연준 본부 리노베이션 비용이 초기 예산보다 7억 달러나 초과한 25억 달러에 달한다"고 비판하며, 연준이 역사상 처음으로 재정적자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만한 예산 집행은 명백한 경영 실패라고 직격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단순한 예산 낭비 지적을 넘어, 파월 의장의 법률 위반 가능성까지 겨누는 '정교한 덫'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보트 국장은 파월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지난 6월 25일 상원 증언을 문제 삼았다. 그는 "당초 승인된 설계도에는 옥상 테라스 정원, 고급 대리석 같은 호화 시설이 포함됐지만, 파월 의장은 증언에서 이를 부인했다"며 "만약 파월 의장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현재 공사는 승인된 설계도와 다른 불법 공사이므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월가에서는 이번 공격이 금리 인하를 거부해 온 파월 의장을 '해임'하기 위한 명분을 쌓으려는 시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백악관이 구체적인 카드를 들고나선 만큼, 연준의 독립성을 둘러싼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연준은 현재 이번 서한에 대해 공식적인 답변을 거부한 상태다.
이러한 갈등은 엇갈린 고용지표가 발표되며 더욱 증폭되고 있다.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22만 7천 건으로 예상보다 낮게 나오며 고용 시장의 견조함을 보였지만, 2주 이상 실업 상태인 '계속 실업수당 청구'는 오히려 증가해 고용의 질적 악화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 연준 내부선 '규제 완화' 속도전…내부 균열 심화
외부의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연준 내부에서는 금융 규제 완화를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연준은 '잘 경영되는 은행'의 기준을 완화하는 새로운 규정안을 공개하고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현재는 자본, 유동성, 지배구조 등 3개 기준 중 단 하나라도 '미흡' 등급을 받으면 '잘 경영되는 은행' 지위를 잃고 M&A 등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 개정안은 이 중 한 가지가 미흡하더라도 나머지 두 가지가 양호하다면 지위를 인정해주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개정안을 주도한 미셸 보먼 금융감독 부의장은 "하나의 문제로 은행 전체를 평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실용적인 접근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는 거세다. 보먼 부의장의 전임자인 마이클 바 이사는 "오랫동안 확립된 개념을 바꾸고 은행 시스템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아드리아나 쿠글러 이사 역시 "반대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는 위험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불과 몇 주 전, 새로운 자본 규제를 도입할 때도 이 두 사람이 반대했던 만큼, 연준 내부에 규제 완화를 둘러싼 균열이 뚜렷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시장 전문가는 "세계 경제의 방향키를 쥔 연준이 외부의 정치적 압박과 내부의 정책적 갈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했다"며 "이는 연준의 신뢰도와 독립성에 대한 우려를 키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