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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에서 별세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향년 100세)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정치 아웃사이더로서 워싱턴에 입성했다.
당시 미국은 워터게이트 스캔들, 고인플레이션, 베트남전 반대 대규모 시위, 과도한 정부 지출과 완화적 통화정책 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1976년 대선에서 승리한 조지아주 출신 카터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제를 물려받았고, 이후 불거진 인플레이션은 1980년 그의 재선 도전에 치명타를 안겼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카터 취임 직전인 1976년 인플레이션율은 6%에 육박했다.
카터 재임 기간 중 인플레이션율은 연이어 6.5%, 7.5%, 11.3%, 13.5%를 기록했다. 경제학자들은 2% 수준을 건전한 인플레이션율로 간주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1978년 이렇게 말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시도를 해왔지만,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시작되면 이를 지속시키는 태도와 습관을 갖게 됐다."
그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예상해 가격을 올리고, 노조는 같은 이유로 대폭적인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일단 시작되면 임금과 물가가 서로를 쫓아 계속 상승한다. 마치 축구장에 서 있는 군중과 같다. 모두가 앉아 있을 때보다 누구도 더 잘 볼 수 없지만, 아무도 먼저 앉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1979년 카터는 당시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였던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지명했다. 볼커는 연방기금금리를 10%에서 18%까지 매파적으로 인상하며 통화정책을 강화했다.
이로 인해 경제는 침체에 빠졌고 실업률은 8%에 육박했다.
같은 해 카터는 이란 혁명 사태도 다뤄야 했다.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1979년 4월부터 1980년 11월까지 유가는 130% 이상 급등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키고 부정적 공급 충격으로 인한 물가와 실업률 동반 상승인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카터는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 테드 케네디의 경선 도전을 받았지만 이를 물리쳤다. 하지만 본선에서는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대패했다. 레이건은 44개 주에서 승리하며 득표율에서 10% 가까운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
볼커의 통화정책과 이로 인한 경기 침체는 카터의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볼커의 금리 인상은 레이건 행정부 시기에도 계속됐다. 금리는 21%까지 치솟았고 이로 인해 1981년과 1982년 장기 침체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경제학자들은 볼커가 역사적인 디스인플레이션과 고인플레이션 기대 종식에 공헌했다고 평가한다. 1980년대 이후 수십 년간 인플레이션은 6% 이하, 대개 2% 수준에서 유지됐다.
역사학자들은 최근 카터의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해 재평가하고 있다. 현재는 그의 행정부가 인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고 인정하고 있다.
카터가 볼커를 연준 의장으로 임명한 것은 정치적으로 큰 대가를 치렀지만, 역사적인 고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 결정적인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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