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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연방대법관 데이비드 수터, 85세로 별세...보수 성향 기대와 달리 중도 노선 견지

Benzinga News-desk 2025-05-10 00:20:45
美 연방대법관 데이비드 수터, 85세로 별세...보수 성향 기대와 달리 중도 노선 견지

데이비드 H. 수터 전 미국 연방대법관이 85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연방대법원 공보실은 수터 전 대법관이 뉴햄프셔주 웨어의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1990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수터 전 대법관은 당초 연방대법원의 보수 성향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취임 후 낙태권, 소수자 우대 정책, 시민의 자유 등 주요 사안에서 결정적인 한 표를 행사하며 신중한 중도 성향의 대법관으로 평가받았다. 그의 사법 철학은 이념보다는 판례와 절차, 원칙을 중시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939년 9월 17일 매사추세츠주 멜로즈에서 태어나 뉴햄프셔 시골에서 성장한 수터는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대 매들린 칼리지에서 수학했으며, 하버드 로스쿨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개업 변호사로 일한 후 뉴햄프셔주 법무장관, 주 상급법원 판사와 대법관을 역임했다. 1990년에는 연방 제1순회 항소법원 판사로 임명됐으나 수개월 만에 깜짝 연방대법관 지명을 받았다.


워싱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으나, 수터는 곧 조용한 성실성과 지적 독립성으로 동료들의 존경을 받았다. 1992년 '플랜드 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판결을 포함한 주요 사건에서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뜻을 같이했다. 이 판결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핵심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었다.


수터는 앤서니 케네디,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관과 함께 다수의견을 집필하며, 공론화된 논쟁 속에서도 헌법적 보호를 유지해야 하는 법원의 의무를 강조했다.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에도 수터는 언론의 주목을 꺼렸다. 인터뷰를 피했고 워싱턴의 사교 생활을 싫어했으며 이메일도 사용하지 않았다. 거의 매주말 뉴햄프셔로 돌아가 화이트 마운틴에서 고독을 즐기며 명성과 거리를 둔 소박한 삶을 살았다. 그는 "법정에 카메라가 들어오는 날, 나는 산으로 도망갈 것"이라고 농담하곤 했다.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 은퇴했으며, 후임으로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이 임명됐다. 은퇴 후에도 공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자녀도 없었다.


존 G. 로버츠 주니어 대법원장은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은 약 20년간 우리 법원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평생의 공직 생활에서 비범한 지혜와 친절함을 보여주었다. 2009년 사랑하는 뉴햄프셔로 은퇴한 후에도 10년 이상 제1순회 항소법원에서 정기적으로 재판을 맡으며 우리 사법부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그의 부재가 크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AI로 번역되어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