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국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600억 유로 규모의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을 담은 2025년 예산안을 발표해 정치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미셸 바르니에 신임 총리는 3.2조 유로에 달하는 국가 지출을 긴축 정책으로 줄이려 하고 있다. 하지만 바르니에가 이끄는 불안정한 연립정부 내에서도 이번 예산안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좌파 의원들은 이번 조치로 수백만 명의 저소득층 가정과 은퇴자, 소상공인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교원노조는 교육 예산 삭감을 '대학살'이라고 표현하며 파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회복지와 의료 분야의 공공지출 증가로 정부 지출이 늘어난 반면 세수는 적자를 메우기에 부족했다. 이로 인해 유럽 2위 경제대국인 프랑스는 유럽연합(EU)이 설정한 GDP 대비 3% 재정적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 GDP 대비 부채 비율, 출처: Statista
프랑스 예산안, 의회서 반대에 직면
이번 프랑스 예산안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정부의 연립 파트너인 신민중전선(NPF)의 의회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바르니에 정부는 10월 8일 NPF가 제기한 불신임 투표를 간신히 넘겼다. 불신임안은 가결에 필요한 289표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마린 르펜이 이끄는 우파 국민연합(RN)이 극좌와 연대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불신임안이 통과됐다면 정부는 지난 6-7월 조기 총선 이후의 혼란과 비슷한 불확실성에 빠졌을 것이다.
예산안 통과 여부와 국가부채 문제, 정치적 혼란으로 프랑스 국채 비용이 상승하고 있다. 프랑스 국채 금리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스페인 국채 금리를 웃돌았다.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 금리, 연초 이후, 출처: TradingView
프랑스 예산안, 기업 부가세 포함
바르니에 총리는 긴축 정책으로 이 같은 우려를 해소하려 하고 있다. 그의 예산안에는 연간 매출 10억 유로를 초과하는 400개 기업에 대한 임시 부가세가 포함돼 있다. 또 연소득 25만 유로 이상 개인이나 50만 유로 이상 부부에 대한 세율도 인상한다.
정부 전망에 따르면 이런 조치로 각각 80억 유로와 20억 유로의 세수가 늘어날 전망이다. 모든 납세자는 2022-2023년 감면됐던 전기 사용에 대한 의무 과세도 부담해야 한다.
또한 국방, 법무, 내무부를 제외한 모든 정부 부처의 예산을 삭감해 200억 유로를 추가로 절감할 계획이다.
복지와 지방정부 예산도 삭감된다. 연금 인상 동결과 공무원 급여 삭감도 예산안에 포함됐다.
프랑스 예산안 '균형 잡혔다'
정부는 올해 GDP 대비 6.1%인 재정적자를 내년에 5%로 줄이려 하고 있다.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을 각각 1.1%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여전히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요구하는 3% 상한선을 넘는다. 현재 지출은 프랑스 GDP의 110% 수준이다. 2025년에는 115%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EU 규정상 최대 허용치는 60%다.
바르니에 총리는 "우리는 '나쁜' 또는 '백지' 수표를 발행해 자녀들의 미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계획이 "균형 잡혔고" "공정하며" 세금 인상으로부터 "일하는 사람들"과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앙투안 아르망 재무장관은 이를 "국제적 신뢰성과 주권의 문제"라고 표현했다. 그는 정부 지출 감축이 "지금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브뤼셀은 프랑스를 포함한 7개 EU 회원국에 대해 시정 절차를 시행했다. 바르니에 정부는 이달 말까지 EU 집행위에 예산안을 제출하고 프랑스의 경제 상황을 개선할 전략을 설명할 예정이다.
프랑스 예산안 '지나치게 낙관적'
프랑스의 독립 재정감독기구는 새 계획이 미래 경제성장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공공재정 고등위원회는 10월 8일 이 전망이 "세계 무역에 대한 호의적인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며 "낙관적인 거시경제 시나리오와 시행해야 할 조치의 규모로 인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GDP(미 달러 기준), 출처: Statista
피치 레이팅스는 10월 11일 프랑스의 장기 외화 발행자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피치는 정부 부채가 더 가파르게 상승해 2026년 말까지 116.3%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피치 레이팅스는 10월 11일 "지난 검토 이후 재정정책 리스크가 증가했다"며 "정치적 분열과 소수 정부로 인해 프랑스가 지속 가능한 재정 건전화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프랑스 예산안, 정치적 역풍
의원들은 프랑스 예산안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의 마뉘엘 봄파르는 이 계획을 "이 나라가 지금까지 본 가장 폭력적인 긴축안"이라고 비난했다.
르펜은 자신과 당이 "바르니에와 새 정부에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증세가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구매력 증대로 상쇄돼야 한다는 등의 레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바르니에 총리는 의회가 예산안을 거부할 경우 헌법 49조 3항에 따라 예산안을 강행 처리할 수 있다.
그는 이달 초 예산안 발표 전 "인기 없어질 위험을 감수하고 있지만, 합리적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