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현재 순자산은 1370억 달러에 달한다. 그의 신문 배달부 시절부터 억만장자 투자자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다.
1930년 8월 30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난 버핏은 11살의 나이에 첫 투자를 했다. 그는 자신과 누이를 위해 시티스 서비스 우선주 3주씩을 구매했다.
그러나 그의 기업가 정신의 토대를 마련한 것은 신문 배달 일이었다. 13세 때 그는 워싱턴 D.C.에서 워싱턴 포스트를 배달했는데, 흥미롭게도 지금은 그가 자주 이 신문에 등장하고 있다.
당시 어린 사업가 버핏은 이 일을 개인적인 경쟁으로 여겼다. 그는 휴일에도 매일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신문을 배달했고, 5개 건물로 이뤄진 배달 경로에서 효율성을 높이려 노력했다.
버핏은 또한 자신의 배달 경로에 있는 집들의 잡지 구독 만료 시기를 추적하는 전략을 개발했고, 새로운 구독과 함께 달력을 추가 서비스로 제공했다.
14세 때 그는 신문 배달에 사용한 시계와 자전거에 대해 35달러의 공제를 청구하며 첫 세금 신고서를 제출했다.
15세가 되었을 때 버핏은 신문 배달로 2,000달러를 벌었다. 그는 이 돈 중 1,200달러를 40에이커의 농장에 투자해 네브래스카의 한 농부와 수익 공유 계약을 맺었다.
버핏의 기업가 정신은 신문 배달에 그치지 않았다. 10대 시절 그는 이미 여러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껌과 코카콜라 병을 팔았다.
또한 그는 핀볼 기계 사업에 투자해 이발소에 기계를 설치하고 수익을 점주와 나눴다.
버핏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는 그의 사진 아래 "수학을 좋아함; 장래 주식 중개인"이라고 적혀 있다. 오마하의 현인은 19세의 나이에 네브래스카-링컨 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2년 버핏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섬유 제조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1965년까지 그는 회사를 장악했고, 이후 이를 다각화된 지주회사로 변모시켰다.
유명한 절약가인 버핏은 매일 소박한 맥도날드 아침 식사를 하는 일과를 유지하고 있으며, 1958년 31,500달러에 구입한 오마하의 같은 집에서 계속 살고 있다.
그는 1962년 32세의 나이에 첫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1985년에는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인내심으로 유명한 버핏은 종종 수십 년 동안 투자를 유지한다. "우리가 가장 선호하는 보유 기간은 영원히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장기 투자 접근법을 잘 요약하고 있다.
2006년 버핏은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주로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는 그의 첫 번째 부인 수잔 버핏이 사망한 지 2년 후에 일어났다. 수잔은 억만장자의 자선 접근 방식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또한 게이츠와 함께 '기부 서약'을 공동 설립해 다른 억만장자들도 자산의 상당 부분을 자선 단체에 기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