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보수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했으나 미국과의 관계 악화와 국내 경제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기독민주당(CDU)과 자매정당은 28.6%의 득표율로 총선에서 승리했다. 극우 반이민 정당인 독일대안당(AfD)은 이민정책에 대한 우려를 바탕으로 20.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2위를 차지했다.
정부 각료 경험이 없는 전통적 보수주의자인 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유럽 최대 경제국이자 최다 인구국인 독일을 이끌게 됐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긴장 관계 해소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69세의 메르츠 대표는 침체된 경제를 부양하고 투자를 늘리며 수출을 증진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최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연이은 테러로 인한 국민들의 불만도 해소해야 한다.
AfD의 약진은 기존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만을 보여주고 있다.
메르츠는 미국과의 대서양 동맹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미국과 러시아의 도전에 맞서 유럽을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서양 관계가 파괴되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해가 될 것"이라며 "미국이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제쳐두고 러시아와 거래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월 18일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리야드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만나 외교 정상화 프레임워크 구축과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미러 공동팀 구성을 논의했다.
이 회담에는 유럽 외교관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민 문제가 선거 전 가장 시급한 현안이었다. 독일 방송 도이체벨레가 실시한 조사에서 37%가 이민을 가장 우려되는 문제로 꼽았으며, 그 뒤를 경제와 외교 정책이 이었다.
올해 들어 독일에서는 두 건의 테러가 발생했다. 2월 13일 뮌헨 안보회의 개막을 하루 앞두고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 차량으로 군중을 덮쳐 2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부상했다.
메르츠는 "우리 중 누구도 국경을 폐쇄하길 원하지 않는다"면서도 "국경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사람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메르츠의 CDU는 630석의 연방하원에서 208석을, AfD는 152석을 차지했다. 이전 연립정부를 구성했던 3개 정당은 의석수가 감소해 사회민주당(SPD)은 120석, 녹색당은 85석을 얻는데 그쳤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빈 브룩스 선임연구원은 이번 선거 결과를 "재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X(구 트위터)를 통해 "CDU가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면서 SPD, 녹색당과의 연정 협상에서 약화된 입지로 시작하게 됐다"며 "이들이 이민 제한과 AfD 표심 흡수를 위한 CDU의 노력을 약화시켰다"고 분석했다.
CDU를 포함한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국내 정보기관의 극우 극단주의 감시 대상인 AfD와의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 메르츠는 4월 말까지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12년 전 창당한 AfD에게 이번 결과는 성공이었다. AfD의 공동대표 알리스 바이델은 화요일 X를 통해 "변화가 감지된다"고 밝혔다.
바이델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국가 주권과 자유가 독일과 유럽의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며 "AfD는 이 길을 단호히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츠는 독일 경제를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세금 인하, 관료주의 축소, 기업가 지원을 주장했다.
메르츠는 "국민들이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고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세금을 낮춰야 한다"며 "기업들이 더 쉽게 운영하고 글로벌 경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경제가 반등해야 하고 다시 성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유럽 최대 경제국은 메르츠의 포부를 가로막을 수 있는 상당한 역풍에 직면해 있다. 여기에는 고령화, 높은 에너지 비용, 낮은 생산성, 산업 경쟁자로서 중국의 부상 등이 포함된다.
연방통계청(Destatis)의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에 0.2% 감소했다. 4분기 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2.7% 감소했다.
4분기 상품 및 서비스 수출은 3분기 대비 2.2% 감소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봉쇄됐던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경제·정치·투자 분석가인 마이클 A. 아루에는 X를 통해 "독일은 수십 년 만에 가장 긴 제조업 침체를 겪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때보다 더 심각하다"며 "이는 상대적으로 좋은 시기에 일어난 일이다. 다음 글로벌 경기침체는 독일에 더욱 가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독일 정부의 재정적자(순차입)는 2024년에 전년 대비 150억 유로 증가한 1,188억 유로를 기록했다. 2024년에는 정부 수입 증가보다 지출이 더 빠르게 늘었다.
시장은 초기에 선거 결과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유로화는 1.05를 넘어서며 한 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 기업들을 추적하는 독일 중형주 지수는 1.4% 상승하며 올해 들어 가장 큰 일일 상승폭 중 하나를 기록했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독일 경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독일 10년 국채와 10년 금리 스왑 간의 스프레드는 화요일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의 시장 전문가이자 저자인 홀거 체피츠는 X를 통해 "이는 독일 국채에 대한 투자자들의 심리가 얼마나 악화됐는지를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시장은 독일이 부채 제동장치를 완화하거나 특별기금을 조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이는 더 많은 국채 발행으로 이어져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루에는 "메르츠 정부가 수년간의 극좌 녹색 정책을 쉽게 뒤집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