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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00세를 일기로 지난 일요일 별세했다. 재임 중 카터 전 대통령은 경제 혼란, 전통 자동차 제조업체 구제, 에너지 위기 등 어려운 시기를 이끌었다.
1976년 미국 제3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터는 외교와 인도주의적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카터의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은 인플레이션 상승과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겪었고, 이는 1980년 그의 재선 실패로 이어졌다.
미국 노동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카터 행정부는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높은 평균 9.9%의 전년 대비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했다. 임기 말에는 인플레이션율이 13%를 넘어섰다.
카터는 1978년 폴 볼커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임명해 급증하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했다. 볼커는 경제 활동을 둔화시키고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로 인해 1980년에는 소비자 대출 금리가 18%까지 치솟았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의 결합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초래했다. 이는 1980년 카터가 재선에 도전할 당시 경제를 침체에 빠뜨렸고, 결국 카터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1980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제조업체 크라이슬러는 미국의 높은 실업률과 경제 침체로 파산 직전에 놓였다. 일자리 손실과 추가적인 경제 악화를 막기 위해 카터는 1980년 1월 7일 크라이슬러 대출보증법에 서명했고, 이를 통해 15억 달러의 대출 보증을 제공했다.
크라이슬러 대출 보증은 회사를 파산에서 구했고, 자동차 산업을 안정시켰으며 수천 개의 일자리를 지켰다. 이는 정부가 경제에 더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전환점이 됐다.
피아트크라이슬러오토모빌스는 크라이슬러의 정부 대출금 125억 달러를 상환했고, 이후 스텔란티스(NYSE:STLA)로 사명을 변경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카터는 재임 기간 중 주요 에너지 위기도 겪었다. 1979년 이란 혁명으로 세계 석유 생산량이 크게 감소했다. 유가는 1979년 중반 배럴당 13달러에서 1980년 중반 34달러로 급등했다.
1979년 여름 연료 부족으로 운전자들이 주유소에서 긴 줄을 서는 상황이 벌어졌고, 카터는 에너지 절약과 대체 에너지 개발을 촉구하며 대응했다.
카터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을 장려했고 에너지 정책을 중앙화하기 위해 에너지부를 신설했다. 카터의 에너지 효율 중시 정책은 가전제품 개선으로 이어졌고, 재생에너지 강조는 향후 태양광 등 대체 에너지 발전의 기반이 됐다.
카터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강조하고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백악관 지붕에 32개의 태양열 패널을 직접 설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