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석] TV스페셜](https://img.wownet.co.kr/banner/202508/2025082621c6d0c271f84886a953aee25d7ba0c0.jpg)


암호화폐 시장은 유행에 민감하다. NFT, 소셜파이, 메타버스 토큰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다가 현실에 직면하면 하락하곤 했다. 올해의 화두는 '디파이(DeFi, 탈중앙화 금융)를 운용하도록 설계된 AI 에이전트'를 의미하는 'DeFAI'다.
1월에는 버추얼스(Virtuals)와 Ai16z 같은 프로젝트들이 토큰 가격 급등을 이끌었다. AI 에이전트 코인의 시가총액은 한때 160억 달러에 육박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월가가 AI 인프라 투자를 바탕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에도 이들 토큰은 가치의 3분의 1가량을 잃었다. 많은 관찰자들은 이를 또 다른 투기적 자기기만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더 지속 가능한 무언가의 서막일 수도 있다.
1세대 DeFAI 프로젝트들은 광범위한 자동화를 약속했다. 버추얼스의 G.A.M.E이나 Ai16z의 엘리자OS 같은 플랫폼들은 이론상 소유자를 대신해 거래, 대출, 투자가 가능한 토큰화된 에이전트를 쉽게 만들 수 있게 했다. DAOS.fun 같은 런치패드는 탈중앙화 헤지펀드의 비전을 제시했다. 투자자들이 자금을 모으면 에이전트가 이를 운용하고, 수익은 토큰 보유자들에게 돌아가는 구조였다.
이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였다. 몇 번의 클릭만으로도 24시간 내내 시장을 살피고 투자하는 지칠 줄 모르는 디지털 일꾼을 배치할 수 있었다. 코인게코의 4월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이 AI가 거래에서 인간보다 나은 성과를 낼 것이라 믿었고, 7명 중 1명은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완전히 맡길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실은 더 평범했다. 대부분의 상품이 일반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을 둘러싼 얇은 껍데기에 불과했다. 거창한 로드맵은 주로 텔레그램이나 디스코드의 챗봇으로 귀결됐다. 토큰들은 12월 정점 대비 90% 이상 폭락했고, 많은 프로젝트의 자금이 곧 바닥났다. 과거 암호화폐 붕괴 때처럼 투자자들은 실용성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교묘한 토큰노믹스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세대 프로젝트들은 더 겸손하고 현실적인 접근법을 채택했다. '만능' 봇 대신 협업 가능한 전문화된 도구에 집중했다.
웨이파인더가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의 에이전트들은 내장된 지갑을 사용해 체인 간 스왑부터 레버리지를 활용한 달러코스트애버리징 같은 복잡한 전략까지 특정 온체인 작업을 처리한다. 이 시스템은 마치 벌집과 같아서, 각 에이전트가 좁은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더 큰 목표를 향해 조율된다.
헤이애논은 소매 투자자 친화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사용자들은 음성으로 지시를 내릴 수 있고("코인베이스에서 0.2 ETH 매도") 에이전트가 거래를 실행한다. 이는 많은 신규 진입자들이 디파이 실험을 주저하게 만드는 기술적 장벽을 낮춘다.
버추얼스 프로토콜은 에이전트 간 거래 표준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에이전트 커머스 프로토콜(ACP)을 통해 봇들이 소통하고 업무를 위임할 수 있게 하여 그들의 능력을 배가시킨다. 이는 단일 슈퍼 에이전트보다는 전문화되고 협력적이며 경험을 통해 자체 개선하는 에이전트 클럽에 가까운 비전이다.
잠재적 보상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암호화폐 자산운용사 비트와이즈는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이 2030년까지 글로벌 GDP에 20조 달러를 더할 수 있다고 추산한다. 단기적으로는 에이전트 간 거래가 가장 매력적인 응용 사례로 꼽힌다. 투자 에이전트가 데이터 분석 에이전트를 고용하고, 이 에이전트가 다시 리스크 모델 에이전트와 상담한 후 거래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이 인간의 개입 없이 지속적이고 저렴하게 이뤄지는 것을 상상해보라.
이러한 비전은 까다로운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 봇들에게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하는가? 금융 규제 준수는 누가 보장하는가? 이들에게 맡겨진 디지털 자산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가? 신뢰성, 보안, 규정 준수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준이 없다면 DeFAI의 최신 버전도 이전 버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암호화폐는 이런 이야기를 전에도 들어봤다. 스마트 계약은 한때 난해한 장난감 취급을 받았고, 탈중앙화 거래소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다. 지금은 둘 다 디파이의 핵심 요소가 됐다. 초기의 광풍은 종종 진정한 혁신을 가리지만, 거품이 걷힌 후에야 그 유용성이 드러나곤 한다.
DeFAI의 진화하는 이야기는 이제 겨우 8개월이 됐다. 1막은 과대 포장된 야망으로 정의됐고, 2막은 더 실용적이어서 에이전트들이 특정 작업에 집중하고 협력한다. 이들이 신뢰할 수 있는 로봇 매니저로 발전할지, 아니면 과거 암호화폐 유행의 퇴비더미로 사라질지는 과대 선전보다는 실제 문제를 규모있게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현재 DeFAI의 불꽃은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더 지속 가능한 무언가로 발전할 수 있다.